글,사진- 김민찬
창밖으로 눈이 소복이 쌓이던 그 겨울날, 나의 어린 마음은 얼음장처럼 차가웠다. 이불 속에 웅크린 채, 나는 흑백 TV에서 새로 산 럭키금성 컬러 TV로 시선을 옮겼다. 그 찬란한 색상들이 내 메마른 세상에 생기를 불어넣으려 했지만, 마음속 공허함은 채워지지 않았다.
방 안에는 메주가 익어가는 구수한 향기가 은은히 퍼졌다. 어머니는 아침부터 부지런히 청국장을 끓이고 계셨다. 그 익숙한 냄새가 코끝을 스치자, 문득 할머니의 빈자리가 더욱 크게 느껴졌다.
"얘야, 이리 와서 담북장(’청국장’의 충청도 방언)을 먹어보렴." 어머니의 부드러운 목소리에 이불 밖으로 빼꼼히 고개를 내밀었다. 그 목소리에는 슬픔과 위로가 공존했다. 마치 우리의 상황을 대변하는 듯했다.
어머니는 따끈한 청국장이 담긴 그릇을 내 앞에 놓으셨다. 그 안에는 방금 만든 두부 조각들이 떠 있었다. 뜨거운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청국장 위로 고소한 콩 냄새가 코끝을 간질였다. 그 순간, 나는 할머니가 끓여 주셨던 청국장 냄새를 떠올렸고, 눈시울이 붉어졌다.
"후후... 뜨거우니까 조심히 먹어야 해." 어머니의 말씀에 나는 조심스레 숟가락을 들었다. 그 손길에는 어머니의 사랑과 걱정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.
청국장을 한 숟가락 떠서 입으로 가져갔다. 뜨거워서 '후후' 불며 조금씩 맛보았다. 입 안 가득 퍼지는 구수한 맛에 온몸이 따뜻해지는 것 같았다. 쫄깃한 두부는 청국장에 으스러져 더욱 깊은 맛을 냈다.